나의 이야기

아버지 기일입니다

cozzie 2013. 10. 10. 02:01

 

올해부터는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었네요.

무엇하나 진득하니 지키질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가벼움이 거슬리긴 합니다만

한글날과 겹치는 아버지 기일에 학교때문에 좀처럼 예배에 참석치 못하던 아이들이

덕분에 함께 산소에 올라갔습니다.

아버지 가시던 날 밤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만

오늘은 화창한 10월의 햇살을 받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가족과. 누이와 조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왼쪽부터 조카 규진이. 누이, 숑, 현서입니다.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무슨 일인지 활짝 웃는 모습과 달리 시무룩한 듯 숑의 표정이 귀엽네요.

망자(亡者)들이 누워계신 묘지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누이와 숑, 그리고 내년 봄 결혼날짜를 받은 조카 나애입니다.

호주에 유학갔을 때 국제전화로 "삼춘 보고싶어 빨리와" 하며 울음을 터뜨려 저를 마음 아프게 하던 어린 조카가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어 결혼을 앞둘 만큼 장성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무한사랑을 독차지하던

숑이 대학교 2학년,

누이도 이젠 오십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아버지 가신지 벌써 햇수로만 14년입니다.

 

 

 

 

 

아버지 산소 앞에 어머니와 함께 섰습니다.

뒤로는 다음 세대인 나애와 현서가 밝은 표정을 짓고 서있습니다. 

이제 제일 앞세대이신 어머니는 퇴장을 준비하고 계시고

저 아이들의 아이들이 언젠가는 이곳을 찾아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저도 언젠가는 손자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할아버지가 되겠지요... 

우울한 생각인가요? 그런데 슬프진 않습니다.

삶과 죽음이 서서히 일상의 일로 다가오는 나이라서 그럴까요...?

 

 

 

산소 앞에 밤나무 몇그루가 서있습니다.

우리 집 여자분들 밤줍기에 꽂혔습니다.

어머니도 나무들 틈에서 열심히 밤을 주우십니다.

그만 가자고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려도 못들은척 하시네요.

그래도 어머니가 모처럼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뵈니 마음이 좋습니다.

사진 찍기 싫어하는 우리 영숙씨^^

그래도 한 장 건졌습니다.

제 눈에는 늘 귀엽고 애교넘치는 데

뚱뚱해졌다, 얼굴이 부었다, 머리가 어떻다 늘 투덜대는 우리 아내입니다.

 

 

 

ㅋㅋㅋ

밤 사냥(?)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는 어머닙니다^^

오른 손에 드신 종이봉투가 밤을 담은 봉지입니다.

점심 식사후 저희 집에 오셔서

오후 내내 삶은 밤을 드시고 가셨습니다.  

이제 할아버지 기일에도

정작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손자들은 없네요..마음 속으로는 그래도 가끔 그리워할까요..?

그렇게 잊혀져가는 게 순리이겠지요.

누구나 말입니다.

아버지 가신 뒤로도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또 진행형입니다.

지금 아버지가 계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아프시더라도 조금 더 살아계시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선듯선듯 피어오릅니다.

화창한 10월 9일에 아버지를 추억하는 아들의 복잡한 심사를

누가 알아줄까요...

 

 

아버지... 가끔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