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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

cozzie 2014. 4. 14. 22:55

 

또 봄이다.

미리 시간 약속을 한 것은 아니어도

4월이 오면 어김없이 추위는 저만치 물러가고

벚꽃을 시작으로 온 천지가 개나리, 철쭉, 그다음엔 목련 순이다.

어딜 보아도 산과 들은 연초록빛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온 세상이 "살아있다"는 신호를 내뿜는 듯 해서 괜시리 마음이 설레고

이 봄이 사라지기 전에 어딘가엘 가서 "신록"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욕심이 슬그머니 찾아든다.

그런데...

생명의 기적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일어난다.

아침 나절,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을 보러 나갔다가

문득 시선이 멈춘 곳,

베란다 청소할 때 물 빠지는 개수구가 한켠에 있는데 거기에 파아란 잎이 하나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빗물 내려가는 파이프 주변을 덮은 스텐레스 덮개와 타일 틈에 아주 조금 흙이 묻어있는데

바로 그곳에 왠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녀석의 씨는 어디서 날아와서 어떻게 이 흙을 찾아

살아남기 위해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1g도 안 되는 생명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잎을 피우는 그 생명력이 눈물겹도록 강렬해보이는 한편으론

물 한번 세게 내리거나

아이의 손길 한번으로도 뿌리채 목숨을 잃을 운명이란 사실이 가엾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이렇지 않을까...

저마다 몇 뼘 되지 않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너무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미련과 욕심을 두고 그걸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 말이다.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자신이 그 거대한 자연의 무력 앞에 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뿌리채 뽑힐 거라는 것을 직감한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래도 우리는..

살기 위해 버둥거린다.

단돈 만원 때문에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내것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폭력과 거짓도 동원한다.

그게 다 결국은 부질없는 짓이란걸 스스로도 알면서 말이다.

저 풀처럼 말이다. 아무리 악을 쓰고 버둥거려봐야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인데... 

 

아... 또 큰 사고가 난 모양이다.

450여명을 태운 배가 제주도로 가다가 순식간에 가라앉아서

300명 가까운 목숨이 경각에 달렸단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이리도 자주 일어날까?

천안함 때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 바다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 배엔 300명 이상의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다는데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을까...?

그 나이의 자식을 둔 아비로서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 행방불명이 된 자식의 아비 어미는 어떤 심정일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옥일 것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그런

차라리 죽음의 고통이 덜 할 것 같은 절망과 두려움, 복받치는 슬픔

도대체 어쩌다 또 이런 사고가 난 것인지

조금전 정부 브리핑이라는 것을 티비로 보았는데

정부관계자도 사태 파악이 제대로 안되었는지

속시원한 답변은 없이 그저 나중에... 나중에... 파악 중이란다...ㅠㅠ

말 잘 듣는 모범생들만 희생되었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역시 어른인 나도 아이들 앞에서 그저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오늘 선장이란 놈이 버젓이 티비에 나왔다.

가장 먼저 죽음의 배에서 도망쳤다니, 그 인식의 부족과 천박함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런 우울한 단상의 와중에도

밖은 봄이 한창이다

벚꽃이 물러나나 싶으니 개나리가 노오란 얼굴을 들고 일어서고

이제 목련마저 꽂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아파트 앞 목련나무는 매년 봄 내 시선을 잡아당기는 반가운 손님이다.  

그래...

이렇게 시간은 무념하게 흘러가는거다.

온통 시끄러운 일들이 가득한 세상 위로

따뜻한 봄볕과 노곤한 날씨는 찾아오고

머잖아 뜨거운 태양과 훅훅 달아오르는 여름이 그 입을 벌리고 우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돌보기에도

이 봄날은 결코 길지 않다. 

더 아끼고 사랑해야지...

 

                                                                     

 

요즘 시쳇말로 내가 "꽂혀있는" 드럼이다.

잠이 모자라서 잇몸이 부르트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도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교회로 달려간다. 

1시간 남짓,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드럼을 두들긴다. 

전에 다니던 학원에 비해 드럼 상태도 좋고 

새로 장만한 vic-firth 스틱의 질감도 마음에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1년 쉬었던 드럼을 다시 시작하는데서 오는 반가움과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악보 연습,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보기에도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이 큰 동기부여가 되는 듯 싶다. 

심지어 아침이 기다려질 때도 있다.^^

다만 본당에 있는 드럼이라 혹시 기도하러오는 다른 교인들 눈치를 보아야 하고

언젠가 담임 목사께서 교회 5층에 입주하시면 소음때문에 불편할 수 있단다.

그때까지만 열심히 치면서 연습하고 

학생회실에 중고 드럼을 하나 헌물한 다음 마음껏 치고 싶은데

비용 문제로 영숙씨가 혹시 허락하지 않으시면

연습을 줄이든가 해야할 것 같다. 

 

수일전에는 대학동기 정지수를 드디어 찾았다.

이제 내가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은 진 상무님을 제외하고 거의 다 찾은 듯 하다.

수서에 살면서 백화점 음식코너를 운영한단다. 

아이들도 대략 나와 비슷한 듯, 조만간 얼굴 보고 소주 한잔 하기로 했다. 

반갑고 다행이다. 

젊은 시절, 내 추억의 한귀퉁이를 차지하던 미안한 사람인데

남은 기간동안 우정을 회복하면서 쌓인 얘기를 풀고 싶다. 

오늘은 이만 얘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