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포근한 주일 오후에
어머니와 아내, 현서와 함께 양평 큰 외삼촌 댁엘 다녀왔습니다.
얼마만이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입니다.
주일 오전인데도 양평까지 길이 하나도 막히질 않네요. 다행입니다.
외가에 도착하니 외숙모께서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팔순이신 큰 외삼촌은 허리가 휘셔서 오래 앉아있기도 힘드신 모양입니다.
순박하고 마음 고운 외삼촌은 아들만 넷을 두셨는데 모두 결혼을 시키시고도
아직 일을 놓지 않으시는 이 땅의 전형적인 농군이십니다.
실로 오랜만에 세배를 드리고
외숙모가 새벽부터 준비하셨다는 토종닭 백숙과 떡만두국, 녹두김치전을 밥상으로 받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외가엘 들리지 못한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외사촌 중에 맏이인 규영이는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 못내려왔고
셋째 규덕이와 넷째 규천이가 제수씨들과 함께 내려왔습니다.
코흘리개 시절 마을 앞 강가에서 징게미와 소라를 잡곤 했었는데
이제 모두 마흔과 쉰을 넘기는 중년이 되었고, 그 긴 시간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네요ㅠㅠ
잠시 외가 식구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양평군 양동면에 있는 수목장을 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아들은 또래도 없고, 누나도 없는 기나긴 자동차 여행이 못마땅한 듯 얼굴이 편칠 않습니다.
집안의 맏이로서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의 묘를 살펴보고 미리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는
의무와 도리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걸까요..?
언젠가는 오늘을 추억하며 아빠가 왜 이 먼 산골까지 자신을 데리고 갔는지 깨닫는 날이 오겠지요..
수목장 입구입니다.
찾는 사람이 얼마 안되는지 스산한 모습입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사무실 모습입니다.
일요일인데도 다행히 근무 중인 직원이 계셨고
자세한 설명과 안내 책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략 개요는 나무 한 그루당 3명의 유분을 묻을 수 있답니다.
한 그루당 비용은 대략 270만원 정도
다섯명까지는 한 나무 아래 묻히는 것이 비용상 가장 적절하답니다.
그러면 천보배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와 아내까지 한 곳에서 현서와 송은이를 기다리면 된단 의미지요...
당장 계약을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비용이 싼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마저도
땅없고 가난한 저희같은 사람에게 기회를 남겨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안내를 자세히 받고 사무실을 나서니 오른쪽으로
수목장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입니다.
눈이 내린지 얼마 안되었는지 곳곳에 쌓인 눈이 보입니다.
이미 많은 지역이 분양이 완료되었고
이곳은 지난해 12월부터 분양이 시작되면서 공사도 함께 진행 중인 구역입니다.
저희도 이 곳에서 할머니가 영면하실 나무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구역에서도 물길을 피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나무들은 이미 분양이나 예약이 끝난 상태입니다.
나무에 노란 띠가 둘러진 곳은 예약이 된 곳이라네요.
아직 조성공사가 마무리되지 않고 겨울이어서 그런지 풍경이 다소 을씨년스럽습니다.
다소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소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서울에서 두시간 반 이상 떨어져 있고
새로 조성 중인 구역은 여기 저기 베어넘어진 나무들과 가파른 흙길 때문에
어수선하고 황량해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설 수목장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어린 나무들만 잔뜻 심어놓고는 수백만에서 천만원씩 장삿속을 차리는 곳보다는
이미 수십년 장성한 소나무 숲에서 불필요한 나무들을 베어낸 다음
분양을 하는 이곳이 안전하고 아늑하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산림청이 관리하는 곳이라 막연한 믿음도 생기구요.
진입로 쪽 수목장은 경사가 급하지만
도로에서 가깝단 이유로 많은 나무가 예약이 되었습니다.
벌써 망자 한 분의 뼛가루가
이 나무 아래에 묻힌게로군요.
대략 60여년의 삶을 살다 가신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신 이 분은 자신이 누워있는 이곳에서 평안을 누리고 계실까요..
마침 건너편 동산에서 한 여자분이 슬픔과 그리움에 목놓아 우는 모습이 보입니다.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었길래 저러시겠지요...
언젠가 제게도 현실이 될 이 장면을 애써 외면해 봅니다.
나무 바로 옆에는
유분함을 묻은 자국이 보입니다.
비록 봉분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유골이 추억과 함께 머물러 있는 곳이 보인다면
남은 가족들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되지 싶습니다.
다... 산 사람들의 욕심 아니겠습니까...
망자는 이미 바람이 되고 흙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새로 조성되는 구역 맨 위에서 내려다 보니
진입로와 저멀리 주변 마을도 보입니다.
풍광은 산속에 안겨있는 형태로 아늑하고 주변에 큰 도로나 공장이 없어 조용한 편입니다.
수목장 한켠에는 벌써 벤치를 갖다놓았네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조성구역이 휑해 보이니까
이런것으로나마 환경미화(?)를 한 듯 합니다^^
쭈욱 쭉 자란 소나무들이 보기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경사가 완만하고 잘생긴 나무들에는
예외없이 예약을 알리는 노란띠가 둘려져 있습니다.
다만,
작년 12월 분양할 때 예약된 이 나무들은
올해 6월까지 사망자가 없으면 자동 해지된다고 하니
그때가서 해약된 나무들을 중심으로 다시 살펴보고
좋은 나무를 하나 구입할 요량입니다.
사무실 직원이 살짝 귀띔해준 정보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도 씽씽 막힘없고
오랜만에 오라버니 내외를 만나신 어머님 기분도 좋으십니다.
아들도 얼굴이 많이 풀렸구요^^
아내와 저 둘다 행복한 피로감 속에
인천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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