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랜된, 익숙한, 그래서 이별에 서투른...

cozzie 2014. 3. 10. 19:45

 

나이를 먹어가면서 젊어서는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 옆에 오래 있던 것들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작년에는 다 떨어진 신발과 옷, 연필깎기 뭐 이런 것들이

익숙해서 좋다고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한 기억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커피포트 이야깁니다.^^

아래 사진에 있는 이 녀석은 

2007년 학원에 있을 때 누이에게서 선물로 받은 겁니다.

커피를 자주 먹는 제게는

뜨거운 물을 받으러 급수대까지 가는 수고를 덜어준 고마운 문명의 이기였지요. ^^

그러다가 4년전 학원을 나와서 과외방을 시작했을 때

새것으로 바꿀까 하다가 멀쩡히 잘 되는 기계를 버릴 이유도 없고

10년 가까이 몸담고 있던 일터의 흔적이 될 만한 것이기도 해

치우지 못하고 계속 써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 투입구도 고장이 나고

손잡이 부분의 센서도 더 이상 말을 듣질 않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얀 색깔도 시간의 무게만큼 변색되어 갔습니다.

불편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독 믹스커피를 좋아 하는 제가 물을 끓인 횟수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주 7일을 일하는 사람이고 평균 커피믹스 3-4잔에 다른 차 1-2잔을 끓이니

1년이면   2,200번

8년을 저와 함께 있었으니 줄잡아 18,000잔을 꿇여낸 중노동을 감당한 거지요.

과외방을 차려놓고 학생이 없어서 두려움이 스멀거리던 시절

담배와 함께 마시던 커피,

30년을 피워댄 담배를 끊고 녹차와 메밀차를 열잔도 넘게 마시던

그해 겨울엔 커피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에야 이 녀석을 은퇴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냥 버리지는 않았구요, 혹시 누군가에게 불완전한 상태로도 조금 더 쓰일 수 있다면

그리 하는게 이 녀석에게도 좋을듯 해 포장 비닐을 씌우고 박스에 넣어

원룸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잠시 후 내여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벌써 가져갔네요.

빙그레 미소가 흘러나왔습니다.

고마왔습니다. 그 사람에게..

먼저 쓴 사람의 사연과 손때 묻은 기계를 사용하는 그 사람이 왠지 좋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좀 찌질한 거 같네요^^

커피포트 하나도 이리 되지도 않는 의미를 부여하고 수월히 놓아주질 못하니 말입니다.

 

 

욘석이 오늘 새로 사온 포트입니다.

스테인리스라 물을 끓일 때 심정적으로 좀 안전하단 생각이 들구요.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반값도 안되는 세일을 한다고 해 덥썩 집어왔습니다.

포장을 뜯고 물을 가득 두번이나 끓여 헹구어 낸 다음

처음으로 커피믹스 한잔을 마셨습니다.

새로 온 이녀석과 또 이런 저런 사연을 만들어 헤어지려 하지 않겠지요, 저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중년의 3월입니다.

 

 

요즘은 말입니다.

한참 어렵던 시절, 기르던 강아지를 길에다 버리던 그날이 자꾸 떠오릅니다.

진이를 인적이 드문 길에 내려놓고 차를 출발시켜 달리다가

슬쩍 사이드미러를 훔쳐보니

진이가 차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차 속력을 내어 달아났습니다.

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되자 저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아니라

부담스런 혹을 하나 떼어냈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악마의 모습을 제 안에서 보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말티즈 강아지들을 볼 때 마다

유기견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숨겨두었던 죄책감과 수치심에 몸서리칩니다.

아이들에게는 병이 들어 병원에 맡기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드랬습니다.

진이는 저를 얼마나 원망했을까요...?

기르지도 못할꺼면서 학대하고 외면하고

결국은 내다버리는 주인을 저주하며 최후를 맞았을까요, 아니면

그런 주인조차 이해하고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속에 길을 헤맸을까요..

진이에게 영혼이 있을리는 없지만

그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잘못했다고...

때늦은 꽃샘 추위가 마음을 우울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