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영어 선생이라는 직업을 1993년에 시작한 이후로
저를 통해 영어를 공부하고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한 아이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20년을 이일을 했으니 아마 적지 않은 중고등학생이 제 수업을 들으며
필기를 하고, 단어를 외우고, 시험을 보고, 영어를 이해하며 성장했겠지요?
학원 강사 생활의 절반을 교연에서 했으니까,
교연학원을 거쳐간 많은 아이들이 저를 기억하겠네요, 의미있는 선생님으로든, 아니면 매를 드는 무서운 선생이든^^
그런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내가 아이들에게 던진 말이나 행동이
그들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셈이어서
책임감이 밀려듭니다.
오늘 반가운 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벌써 졸업한지 5년이나 된 서인천고 출신 남학생들입니다.
김정호가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는 의미에서 노예반으로 더 많이 불린 "연대반"에서
체벌과 폭언, 새벽 2시까지의 무지막지한 수업을 이겨내고
대학생이 된 뒤에도 조폭같은 선생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고마운 제자들입니다.
양찬욱 군 군대 가기전에 얼굴 보고는 한 2년만이지 싶네요^^
좌측부터 동국대학교 전기학과에서 태양전기를 연구하고 있는 양찬욱군,
단국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민진군,
서울대학교 기계항공학과에서 물리와 유체역학에 묻혀 사는 이재영군,
그리고 숭실대에서 토목을 전공하면서 기사자격증을 준비하는 백선태군입니다.
모두들 아저씨가 다 되었네요. ^^
아이들 말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3 때까지
제게 맞은 회초리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거랍니다.
많이 아팠지만 오늘의 자신들을 있게 한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단 말을 하더군요.
미안하면서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제가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강제로 시켰던
영어일기 쓰기, 단어시험, 독후감, 문법수업들이
대학에서 각자 전공영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었단 말을 듣고
보람을 느끼지 않는 교사가 대한민국에 있겠습니까??
자리를 과외방 근처의 호프집으로 옮겼습니다.
한달 전 입대하는 오동현군 환송회 자리를 열었던 곳입니다.
아! 그때 저를 찾아왔던
인하대에 다니는 임상원 군과 호서대에 다니는 김연지양도
모도 서인천고 출신들이네요..^^
불금이기는 하지만,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몸도 피곤하고 내일 오전 수업이 걱정되긴 했어도
아이들과 모처럼 술 한잔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찬욱과 재영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더 생기있어 보였고
학점 hunter로 유명한 선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전공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민진이는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있더군요.
다들 제 삶의 무게만큼이나 크고 작은 고민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들, 특히 학원에서의 에피소드들을 기억해내고
그때 스쳐갔던 여러 학생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들로 술자리 내내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선태가 많이 반가왔습니다.
당시 연대반은 그야말로 공부좀 하는 아이들 천지였는데
그 속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꿋꿋이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한 우직한 아이입니다.
앞으로 선태의 앞길에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져 가벼운 취기와 함께
집까지 걸어왔습니다.
유쾌했습니다.
삼십 초반에 시작한 영어선생의 길이
벌써 20여년을 헤아리는데
아직도 제게 배운 학문과 삶을 그리워하며
저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영어 선생으로 살아온 지난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든
도움이 되었고, 그로 인해 저를 기억할 수 있단 사실이
고맙고 다행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부닥치게 될 취업과 결혼, 가정의 삶과
그 이후의 인생에서도
제게 보여준 열정과 진지한 자세로 살아가면서
건강한 대한민국 시민의 모범이 되어주길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아............
행복한 불금입니다.
오늘 먹은 국산맥주는 평소와 달리 아주 맛있었습니다.
ㅋㅋ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인연이란....그리고 기억. (0) | 2013.03.20 |
---|---|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 (0) | 2013.03.19 |
아버지 봄에 새옷 입혀드릴께요.ㅠㅠ (0) | 2013.03.13 |
두유워너 원두커휘?^^ (0) | 2013.03.07 |
봄이 오는 길목에 (0) | 2013.03.06 |